Friend: A Novel from North Korea, 폐쇄된 체제 속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북한 문학의 수작
Friend: A Novel from North Kore는 백남룡(Paek Nam-nyong)이 198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외부 세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문학의 숨겨진 걸작이다. 이 소설은 이혼을 원하는 한 부부와 이들을 상담하는 판사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북한 사회 내부의 가족관, 사랑, 노동, 책임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단순한 이혼 서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제 속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정교한 심리극이자 사회 보고서이기도 하다.
외부에서는 종종 선전물로 치부되기 쉬운 북한 문학에서 이렇게 섬세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일은 드물다. 이 작품은 ‘북한 소설’이라는 선입견을 넘어, 인간 본연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는 진지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작품 개요: 이혼 청구서에 담긴 삶의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은 부부 갈등이다.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해온 오영숙과 그녀의 남편 최철호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느끼고 이혼을 청구한다. 그들의 갈등은 단순한 감정적 충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기대와 오해, 사회적 책임, 개인의 좌절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이다.
이혼 사건을 맡게 된 판사 정진우는 이들을 단순히 판결의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삶과 감정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는 부부의 과거와 현재를 조사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실에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감정과 상처, 체제 안에서 부부와 가족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독자는 함께 경험하게 된다.
북한 사회의 일상성과 정체성의 교차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북한이라는 특수한 체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물들의 감정은 지극히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이혼이라는 소재는 남한이나 서구 사회에서도 흔히 다루어지는 주제지만, 작가는 그것을 단순한 갈등이 아닌 ‘사회적 관계의 총합’으로 풀어낸다.
북한 특유의 조직생활, 직장 문화, 도덕적 기준 등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배경은 인물들의 선택과 갈등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작가는 체제를 옹호하기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심리묘사의 섬세함과 진정성
백남룡은 인물의 심리를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오영숙의 감정선은 극히 현실적이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아이들과의 관계, 사회적 평판, 여성으로서의 자아까지 수많은 갈등을 동시에 품고 있다. 남편 최철호 또한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다. 그의 무뚝뚝함과 현실적 무기력은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인간적 약점으로 그려진다.
판사 정진우의 시선은 중립적이되 따뜻하다. 그는 법률가로서의 책임감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와 화해를 중시하는 도덕적 인물로 묘사된다. 그의 인간적인 접근은 독자로 하여금 ‘판사’라는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체제 선전이 아닌, 삶의 이야기
북한 문학은 대체로 체제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Friend』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다. 등장인물들은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고통을 겪는다. ‘혁명’이나 ‘충성’보다는 ‘이해’, ‘공감’, ‘화해’라는 감정이 주요한 메시지로 작용한다.
이는 백남룡이 실제로 인민법원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다양한 부부 갈등을 목격한 경험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의 필력은 단지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재현하는 데에 있다.
현실감 있는 서사와 배경
작품 속에는 북한의 노동 환경, 주택 문제, 조직 생활, 예술가의 삶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이야기의 중심이 아닌 배경으로 작용하며, 전체적으로는 인물 간의 심리와 관계가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예를 들어, 최철호는 음악가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의 직업적 정체성과 가정 내 역할 충돌은 부부 갈등의 중요한 축이다. 이처럼 작가는 각 인물의 배경을 통해 북한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갈등의 근원을 탐색한다.
문체와 구성의 특징
『Friend』는 문장이 간결하고 담백하다. 지나치게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독자의 해석을 위한 여백을 남긴다. 이는 오히려 인물의 감정을 더 진하게 전달하며,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삶에 비추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은 전개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그만큼 인물들의 내면에 천천히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대화체가 많아 실제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생동감도 느낄 수 있다.
독자로서의 감상과 사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공감’이었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이념의 벽을 넘어서, 인간은 결국 사랑하고, 실망하고, 갈등하며, 화해를 희망하는 존재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혼이라는 사적인 사건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와 얽히고설켜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품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Friend』는 북한을 알기 위한 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특히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이 작품은,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원리를 담고 있다.
결론
『Friend: A Novel from North Korea』는 북한 문학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깨는 중요한 작품이다. 단순히 체제를 소개하거나 선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고통과 회복, 관계의 진실함을 담담하고도 진지하게 풀어낸다. 한 국가의 체제 이면에서 숨 쉬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관계의 본질, 인간의 약함과 강함, 그리고 화해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것은 북한이라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