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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Breath Becomes Air,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묻다, Paul Kalanithi

약3시간전 2025. 4. 28. 01:46

의사였던 한 인간이 환자가 되어, 삶의 의미를 다시 써내려간 마지막 기록

When Breath Becomes Air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의 자전적 회고록이자 유작이다. 그는 예일대학교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스탠퍼드에서 촉망받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던 중, 서른여섯의 나이에 폐암 4기 진단을 받는다. 한때 수술실에서 생사의 경계에 놓인 환자들을 다뤘던 의사가, 이제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환자가 된다.

이 책은 의사로서, 작가로서, 환자로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인간으로서 남긴 고요하지만 강렬한 마지막 성찰이다. 폴은 병상에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언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붙잡고자 했다. 그의 글은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라,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무엇이 진정한 삶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삶의 기록이다.


의사에서 환자로: 정체성의 급격한 전환

책의 서두는 고요하게 시작된다. 폴은 특유의 섬세하고 냉정한 의사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는 의학과 문학을 모두 사랑했고, 언어를 통해 인간의 고통과 회복을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폐암 진단이라는 절망적인 전환점 이후, 그의 시선은 급격히 바뀐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다. 그는 이제 병원복을 입고 수술대에 눕는 입장이 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에 떨고, 삶의 유한성을 통감하는 존재가 된다. 이 급격한 전환은 그의 글 전반에 깊은 울림을 더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미루다 보면, 끝내 의미를 찾기 전에 삶이 끝나버릴 수 있다.”

그는 절박하게 의미를 찾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구성해 나간다. 의사로서 보던 ‘죽음’은 이제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며, 동시에 더 이상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글쓰기: 죽음을 담는 그릇

폴은 문학을 전공한 뒤, 의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하지만 문학적 감수성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 되었고, 죽음 앞에서도 그는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이 책은 바로 그 글쓰기의 산물이다. 고통, 공포, 사랑, 의무, 절망, 그리고 마지막까지의 희망이 고요한 언어로 짜여 있다.

그는 죽음을 단지 끝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철학을 문장으로 구체화한다. 문장은 결코 과장되지 않으며, 단정하고 절제된 어조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 절제 속에 담긴 감정은 폭발적이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나는 삶을 더 선명하게 보았다.”

그의 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삶과 죽음의 정의’를 생각하게 만든다.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폴은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진짜 삶의 의미에 집중한다. 그는 “의미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은 그가 암 투병 중에도 아내와 관계를 회복하고,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그는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죽음조차도 삶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생의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나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삶에 남아 있다는 것’이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딸에게 유언처럼 남긴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의 마지막 프로젝트이자, 나의 사랑이 영원히 머물 세계다.”

그의 딸은 생후 8개월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의 사랑과 존재는 이 글을 통해 딸의 인생에 길이 남게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When Breath Becomes Air는 단순히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피하고, 외면하고, 언급조차 꺼려하지만, 폴은 오히려 죽음을 마주하고, 준비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주도적으로 선택하려 했다.

그는 치료 방식을 선택할 때에도 ‘삶의 질’을 중심에 두고 결정했다. 완치를 위한 무리한 시도보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신과 존재를 지키고자 했다. 그 선택은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누구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죽음을 통제할 수 없지만,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그 말은 단순히 철학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윤리이며 신념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

폴은 신경외과 의사였기에 인간의 뇌, 곧 의식과 자아의 중심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는 뇌가 망가졌을 때 인간의 인격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뇌와 폐를 파괴해가는 병에 걸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더욱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몸이 망가져가는 순간에도, ‘나’라는 자아가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글쓰기 자체가 ‘나는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고,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그의 문장은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도구였고, 독자와 연결되는 다리가 되었다.


남겨진 자들의 목소리: 아내의 에필로그

책의 마지막에는 폴의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가 쓴 에필로그가 실려 있다. 루시는 남편이 죽은 후, 그가 남긴 문장을 편집하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녀의 글은 단순한 해설이 아닌, 남편과의 마지막 순간들을 공유하는 따뜻한 고백이다.

루시는 이렇게 말한다.

“폴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죽음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았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루시의 시선은 독자에게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그가 남긴 사람들의 삶도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읽고 난 후의 감상: 삶의 끝에서 배운 것들

『When Breath Becomes Air』는 죽음을 다루지만, 죽음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삶’에 대한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폴 칼라니티는 단지 암 환자나 의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우리는 언젠가 그처럼 병상에 누워 삶을 되돌아볼 것이다. 그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론: 호흡이 공기에서 공기이기를 멈출 때

When Breath Becomes Air라는 제목은,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 ‘호흡이 더 이상 공기가 아닌 것이 되는’ 그 찰나를 의미한다. 폴은 바로 그 경계선에서 마지막까지 쓰고 말하고 사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단지 한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사랑할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단단한 문장, 정직한 고백, 그리고 섬세한 감정 속에서 우리는 삶의 본질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삶이란, 죽음을 포함한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한 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