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Not Part,제주 4 3의 기억과 세대를 잇는 서사, 한강
폭력의 기억과 침묵, 그리고 연결의 문학
『We Do Not Part』는 한강(Han Kang) 작가의 신작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깊고도 아픈 상처인 ‘제주 4·3 사건’을 중심에 둔 서사이다. 『채식주의자』와 『흰』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침묵, 존재의 경계에 천착해온 한강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감각적이고 내밀한 문체로 집단적 트라우마와 그 이후의 세대를 조심스럽게 마주하게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회상하거나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We Do Not Part』는 시간, 기억, 육체, 언어, 침묵, 회복이라는 복합적인 요소들을 교차시키며, 역사의 폭력에 휘말린 한 개인과 그 가족,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간직한 침묵의 무게를 글로써 건드린다.
작품 줄거리와 구성 개요
이야기의 중심은 ‘정이랑’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에게 입양되다시피 길러졌고, 그 할머니는 바로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다. 정이랑은 어느 날 자신에게 전해진 오래된 편지 한 장으로부터 할머니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 편지는 오랜 세월 숨겨진 가족사의 실마리였으며, 동시에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를 잇는 상징적 연결점이 된다.
소설은 크게 세 축을 따라 움직인다. 첫 번째는 4·3 사건 당시의 생존자 기억, 두 번째는 이랑의 현재와 과거를 파고드는 과정, 세 번째는 편지의 주인공인 또 다른 생존자의 시점이다. 이 다층적인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단일한 시선이 아닌 다면적인 감각으로 역사를 느끼게 만든다.
기억과 언어, 침묵과 복원의 시도
『We Do Not Part』는 "기억되지 못한 고통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4·3 사건은 오랫동안 공적 기록과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었으며, 많은 생존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검열하며 살아야 했다. 작가는 이 억압된 기억을 언어로 복원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의 폭발이나 분노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조용하고 절제된 어휘, 간헐적인 이미지, 단절된 문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강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말할 수 없음과 말해질 수 없음 사이의 간극, 그 불가능성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며, 이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서사이자 증언이 됨을 증명한다.
세대 간의 상처 계승과 회복의 가능성
이 작품의 핵심 중 하나는 고통이 세대를 어떻게 관통하는가이다. 정이랑은 자신이 겪지 않은 사건으로부터 정체성의 혼란과 무력감을 경험한다. ‘대물림된 상처’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구현된다. 이랑의 몸, 말, 감정은 자신이 겪지 않은 과거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집단적 트라우마가 어떤 방식으로 현대인의 삶 속에 잔존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상처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마주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회복의 시작임을 말한다. 정이랑이 편지의 내용을 읽고, 할머니의 삶을 다시 바라보며, 침묵을 언어로 번역하려 할 때, 독자 또한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문체와 형식: 감각을 깨우는 문장, 촘촘한 서사 리듬
한강의 문장은 여전히 유려하면서도 날카롭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이미지 중심의 묘사가 인상 깊다. 피 냄새, 먼지, 습기, 어둠, 살갗에 닿는 물기 등 감각적인 요소들이 독자의 심상에 깊이 각인되며, 과거의 경험을 육체적으로 체화하게 만든다.
또한 시점 변화, 과거와 현재의 교차, 문장 간의 여백 등을 활용해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구성 자체가 역사적 서술이나 연대기적 방식이 아니라, 단편적 기억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시를 만드는 듯한 형식이다. 이 리듬감은 단지 읽는 행위를 넘어서, 체험으로 이어지게 한다.
죽은 자들과의 대화, 살아 있는 자들의 책임
『We Do Not Part』의 감정선은 끝내 죽은 자들과의 ‘대화’로 향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유령 같은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 죽은 자들은 여전히 말을 걸고, 살아 있는 자들은 그 목소리를 들으려 애쓴다. 작가는 이러한 형식을 통해, 잊힌 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침묵 속에 감춰진 기억을 현재로 불러낸다.
이 과정은 단순한 애도나 위령이 아닌, 책임의 감각으로 작동한다. 한강은 말한다 —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라는 것을.
읽고 난 후의 감상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숙연함, 그리고 숙고이다. 한강의 문장은 독자를 울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우리는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침묵을 견디는 힘, 그리고 그 침묵을 감싸는 언어의 온기를 경험한 것이다.
결론
『We Do Not Part』는 단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역사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 입은 기억, 말할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려는 용기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죽은 자들을 위한 문학을 썼다. 그리고 동시에, 살아 있는 우리에게 그 죽음을 기억하고 말할 책임이 있음을 일깨운다.
이 책은 우리가 잊었거나, 외면했거나, 혹은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을 시적으로 복원한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문학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