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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Son - 완벽한 아들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진실 (Jeong You-jeong)

by 약3시간전 2025. 4. 24.

기억의 틈과 내면의 어둠을 파고드는 심리 스릴러

정유정(Jeong You-jeong)의 『The Good Son』은 "내가 어머니를 죽였는가?"라는 충격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가 아니다. 독자를 주인공의 심리 안으로 깊이 끌어들여, 진실과 착각, 선과 악, 기억과 망각의 경계 속을 헤매게 만든다. 이야기의 모든 구조와 전개는 독자가 현실을 잊고 인물의 심리 안으로 침잠하게 하며, 범죄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The Good Son』은 한국어로 2016년에 출간된 이후, 전 세계 12개국 이상에 번역 출간되며 한국 스릴러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유정 특유의 날카로운 문장과 몰입감 있는 구성은, 독자가 단 한 장도 쉬이 넘기지 못하게 만든다.


줄거리 요약: 피로 물든 아침, 그리고 시작된 3일간의 추적

열아홉 살 유진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손에 묻은 피와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기억이 없다.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조차 흐릿하다. 유진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가족사, 심리 상태, 그리고 내면 깊숙한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틀 반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짧은 시간 동안 유진의 내면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재구성된다. 독자는 유진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점점 그가 믿을 수 없는 인물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유진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심리적 퍼즐

『The Good Son』의 가장 독특한 서사적 장치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다. 주인공 유진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서술하지만, 그의 말은 불완전하고 왜곡되어 있으며, 심지어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기도 한다. 독자는 그의 눈으로 사건을 목격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말하지 않은 것, 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구조는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앞서 읽은 내용이 다음 장면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재해석되며, 진실에 다가갈수록 인물의 어두운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이러한 전개는 독자에게 불쾌함과 흥미, 긴장과 몰입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서사

유진은 외견상 완벽한 아들이다. 공부도 잘하고 예의 바르며, 동네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다. 그러나 이 ‘좋은 아들’이라는 이미지 뒤에는 병적인 자기중심성과 감정 결핍, 그리고 폭력성이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흔히 믿는 도덕적 이분법, 즉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도를 깨부순다.

유진은 자신이 한 행동을 때로는 합리화하고, 때로는 왜곡하며, 심지어 스스로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사고의 흐름은 그 자체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작가는 독자에게 단순한 '악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자신을 잃고 타인을 해하는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폭력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억압과 통제를 주된 배경으로 삼는다. 유진의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 사랑은 일방적인 통제와 기대, 심리적 압박의 형태로 작용한다. 유진은 ‘좋은 아들’이라는 틀에 갇혀 자랐고, 결국 그 틀은 그를 파괴적인 존재로 만든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이 소설에서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죄의식과 자기기만, 억눌린 감정이 축적되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유진이 어머니와 맺은 관계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이상화된 ‘가족’의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문체와 서술의 미학

정유정의 문장은 직선적이고 날카롭다. 그녀는 불필요한 수식 없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건조하게 그려내며, 오히려 그 절제된 표현이 독자에게 더 큰 충격을 준다. 특히 유진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는 내면 독백은 무심하고 기계적인 어조로 쓰여 있어, 그가 지닌 감정 결핍과 사회적 어긋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유진은 어머니의 시신을 바라보며 “어떻게 이렇게 조용히 누워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슬픔이나 충격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쓰였으며, 독자는 그 거리감에 소름을 느끼게 된다.


장르적 스릴과 문학적 깊이의 결합

『The Good Son』은 장르소설의 외형을 갖추었지만, 그 안에는 문학적 깊이가 내재되어 있다. 추리소설이나 범죄 스릴러의 전개를 따르면서도, 실제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범죄의 수사나 해결이 아니라,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인물의 심리적 토대와 사회적 맥락이다.

이 책은 단순히 ‘왜 죽였는가’가 아닌, ‘어떻게 그렇게까지 되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래서 결말에 이르러 진실이 밝혀졌을 때, 독자는 안도감보다는 묵직한 허탈감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악’을 타인의 것이라 여겨왔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정유정은 독자에게 자꾸만 묻는다. “당신이라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기억을 믿을 수 있는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유진이라는 인물은 비정상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과 사고가 실제로 우리 일상 속에서 얼마나 쉽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감정의 억압, 가족 내 기대와 압박, 타인의 인정에 대한 중독적 집착 등은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문제다. 유진은 괴물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더 무섭고, 더 슬프다.


결론

『The Good Son』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무너짐을 치밀하게 추적한 심리 보고서이며, 동시에 현대 사회의 가족, 교육, 감정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다. 정유정은 이 작품을 통해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분을 해체하고, 독자에게 인간 본성의 그레이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기억이 왜곡되고 감정이 결핍된 인물의 눈을 통해, 우리는 ‘정상’이라 불리는 세계의 균열을 목격하게 된다. 『The Good Son』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무섭고, 끝내 마음에 찜찜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바로 그 찜찜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힘이며, 문학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다.

이 책은 감정이 고요해진 밤, 혼자 읽기에 가장 적절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